서영우 한화디펜스 국방로봇사업부장(전무). /사진제공=한화디펜스
"빨리 계산하고 많이 기억하는 것처럼 인간이 잘하지 못하는 것은 옛날부터 컴퓨터가 잘 했죠. 대신 4살짜리 아이도 잘하는 걸 컴퓨터는 잘 못해요. 다목적 무인차량이 전장에서 장애물을 인식하고 피해서 돌아가는 것도 사람 입장에서는 쉬워 보이지만 노력이 많이 들어간 인공지능 기술이죠."
서영우 한화디펜스 국방로봇사업부장(전무)은 장애물을 피해 이동하는 한화디펜스의 다목적 무인차량 'ARION-SMET'(아리온 스멧) 영상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서 전무는 한화디펜스의 무인화 체계 관련 연구·개발 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 하이퍼루프 등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한화에 영입됐다.
한화디펜스 아리온 스멧은 자동차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처럼 앞의 차량이나 보병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거나 멈춘다. 내비게이션에 2차원 좌표인 웨이포인트를 여러 개 찍어주면 경로를 생성하고 생성된 경로를 따라 자율 이동한다. 자율주행과 원격 모두 가능한 데다 길을 가던 중 통신이 끊기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기능도 탑재했다. 경쟁사의 장비는 경로에 장애물이 있으면 멈추지만 한화디펜스는 움직이는 장애물을 인지·추적하고 식별된 장애물과 충돌하지 않도록 옆으로 피해가는 시스템까지 개발 완료를 앞뒀다.
테슬라, 웨이모도 못하는 야지 자율주행…아리온은 한다
한화디펜스의 다목적 무인차량 'ARION-SMET'(아리온 스멧). /사진제공=한화디펜스
이를테면 자동차는 수풀이 있는 환경에서 주행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군의 무인차량은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도 달려야 한다. 서 전무는 "사람이 야지에서 운전한다면 수풀의 키가 커도 피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지만 무인차량에 장착된 라이다(레이저를 통해 물체까지 거리를 측정하고 형상을 이미지화하는 기술)만 이용하면 키가 큰 수풀을 장애물로 인지해 돌아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카메라에서 획득한 이미지를 라이다의 데이터와 융합하면 수풀이 있어도 피하지 않고 주행할 수 있는 영역으로 식별할 수 있다"며 "수풀과 장애물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상당한 기술력을 요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러브콜..국가 경제 이바지 기대
한화디펜스의 무인수색차량. /사진제공=한화디펜스
한화디펜스의 무인화체계 기술은 방위산업 선진국인 미국, 독일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서 전무는 "전 세계적으로 무인화 체계는 전력화를 갓 시작하는 단계인데 한화디펜스도 이에 발맞춰 가고 있다"며 "독일 라인메탈이 공개한 자율주행 패키지와 비교했을 때 하드웨어는 좀 더 우세하고 소프트웨어 기술력도 낮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온다. UAE(아랍에미리트), 미국, 호주 등이 한화디펜스가 무인화 체계 수출을 타진하는 국가다. 특히 UAE는 지상군 사령관 명의로 한화디펜스에 다목적 무인차량과 관련한 공식 서한을 보내왔다. 서 전무는 "UAE에 다목적 무인차량 수출을 추진하고 있고 현지로 가서 시범운용하려는 계획도 있다"며 "현재 업그레이드 된 제품은 한국군에서 요구하는 조건보다 성능이 2배 이상 뛰어나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맺은 호주에도 후속사업으로 무인화 체계를 제안했다. 서 전무는 "호주에서 K9 자주포를 무인체계와 함께 운용하는 유무인 복합체계 후속사업에 관심이 많다"며 "연말쯤 공식적으로 제안서를 보낼 예정인데 호주군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군이 제안을 채택하면 K9 자주포 운용국인 터키, 노르웨이, 핀란드, 이집트 등에도 무인화 체계 후속사업을 수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군과도 여러 채널을 통해 무인화체계 수출을 논의하는 상황이다. 서 전무는 "한국에 주둔하는 미 8군은 무인체계 합동 작전에 관심이 많은데 최근 한화디펜스 본사를 방문해 다목적 무인차량 데모를 보고 갔다"며 "하와이에 주둔하는 미 해병대도 물자 수송을 위한 무인화체계에 관심이 커 문의가 온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동맹국의 우수 방산 제품 및 기술을 시험하는 해외비교시험(FCT)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군 무기체계 조달 시장에 진출하려면 이 프로그램을 통과해야 하는데 미 해병대는 한화디펜스의 다목적 무인차량을 FCT 대상으로 제안했다.
한화디펜스 국방로봇사업부는 미군의 다영역작전 역량 고도화 실험인 '프로젝트 컨버전스'에도 참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서 전무는 "프로젝트 컨버전스에선 기존에 전력화된 브래들리 장갑차, 에이브람스 탱크 등과 함께 새로 나온 무기체계를 실험하는데 한화디펜스 무인체계도 내년에 참가할 것"이라며 "미 육군이 AI(인공지능) 통합센터를 운영하는 카네기멜론대 NREC(국립로봇공학센터)와 관련 사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韓 무인체계 발전하려면…"규제샌드박스·테스트베드 절실"
서 전무는 "한화디펜스는 처음 무기 체계를 개발할 때 반드시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며 "무인체계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군 전력화 이후 수출을 하면 늦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여러 국가에서 한화디펜스의 무인체계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수출에 성공해 국가 경제를 살리고 싶다"며 "무인체계 수출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서 전무는 한국의 무인화 체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서 전무는 "처음 개발하는 무기체계라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현재 행정제도상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며 "개발하는 입장에선 규제를 풀고 절차를 간소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무인화 기술을 시험하고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테스트베드도 아직 부족하다. 서 전무는 "무인체계가 오프로드 야지에서 주행하기 위해선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수집한 수많은 데이터로 기계학습을 해야 한다"며 "군 부대 소유지가 실제 전장 환경과 유사해 무인체계가 알고리즘을 실험하고 학습하기 좋지만 보안 규정 때문에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훈련하지 않을 땐 방산기업이 무인체계를 잘 개발할 수 있게 군 시설을 개방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군 관계자들과 논의를 해 볼 예정"이라며 "최근 국방부 차원에서도 이런 제한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인데 다양한 야지에서 실험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테스트베드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